20101122 : 지리산행 - 안개 속을 걷다? 구름 위를 가다!

6년만에 다시 찾은 지리입니다.
십수년 전에 그러하였듯이 오늘도 하늘을 볼 수 없어 땅만 보고 살다 다시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보는 나의 시작, 지리입니다.
지리는 나를 품어주고 보듬어 살게 해서 보내어주었더랬지요.
그렇게 지리는 그 자리에서 나를 또 기다리고 있었고 말을 걸어주고 기운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 품에 안겨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로....

새벽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거세더니 백무동을 오르는 순간 빗줄기는 안개가 되어 맞아주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어 하루 산행을 계획하고 가장 고마운 코스, 백무동-장터목-천왕봉-백무동으로 잡았습니다.
늘 종주를 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일정상 성삼재부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화엄사부터 산을 오르며 세속에 찌든 내를 다 씻어 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서둘러 하는 종주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건 가짜입니다.
다행히 하루 산행이지만 백무동으로부터 오르며 지리를 만날 수 있어 고마웠지요.
이곳은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오르는 중간 지점 참샘입니다.
고즈넉해질대로 고즈넉한 지리의 품 한 가운데입니다.

참샘에서부터 깔닥고개를 만납니다.
이곳이 지리를 오르는 관문이자 한계점입니다.
여기만 넘으면....

백무동 길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인 산죽길입니다.
어느 순간 숨이 턱에 꽉차고, 발에는 힘이 빠지고, 그저 주저앉아 버릴 것같은 한계...
그러나 한걸음을 옮기고 나면 다시 솟아나는 힘, 그리고 자유,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신기하고 신기합니다.
이 곳 산죽밭에 이르면 지리가 그 품에 품어 줌을 느끼게 됩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 새털 같습니다.

저 끝에 무엇이 있을지, 그 분의 품, 나의 품입니다.
내가 산을 오르는 것같지만, 사실은 산이 나를 오르고 있음을....

비오는 날, 안개 가득한 날 산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날은 산내음이 코 안 가득, 허파 가득이지요.
어머니가 다려주시던 한약 내음같기도 하고, 지리산에 가득한 잔나무, 전나무, 주목의 향이 코로, 세포로 찾아온답니다.
천국입니다.

그런, 안개 속을 걸었습니다.

이곳은 백무동 길을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 망바위에서 보는 전망입니다.
거의 환상이었지요.
어느 날은 장터목으로 구름이 넘나드는 것을 보여주고, 봄날에 찾으면 온통 연두빛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지난 레드 산행에서 참외님께서 제게 개인적으로 사사 받은 곳이라 말씀하셨던 곳...
저와 함께 지리를 찾으시는 분들만 보실 수 있는 곳이랍니다. ^^

안개 속을 걸었는데....

그것이 안개였는지, 구름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서서히 구름 위로 오르고 있습니다.
환해집니다.

드디어 장터목... 운무가 발 아래입니다.

이곳은 입산통제로 아쉽게 들지 못한 세석 가는 길입니다.
가히 신의 정원, 세상에서 가장 예쁜 길이 2시간여 이어집니다.
아깝고 아까워 천천히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는 이 길, 이번에는 가슴의 기억만 담습니다.

장터목산장, 늘 그렇게 든든합니다.

장터목 산장에서 천왕봉 오르는 길입니다.
6년만에 오는데, 너무 단정하게 길을 다듬어 놓아 놀랐답니다.

장터목에서 제석봉을 오르는 길, 구름 위를 가고 있지요.
6년만의 산행이어서인지 갑자기 허벅지에 쥐가 납니다.
한걸음도 뗄 수가 없습니다.
위는 까마득하고, 아래는 돌아보고 싶지 않습니다.
한참 갈등하고 걱정하다 한 걸음씩 옮겨 봅니다.
죽을 힘을 다해서, 혼자하는 산행, 여기서 낙오하면.... 온갖 생각을 뒤로하고 찢어지는 통증을 참고 내딛기를 5분여...
씻은 듯이 통증은 가시고 몸을 나를 듯이 가벼워집니다.
옮겨 보아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죽습니다.

제석봉, 가히 천왕봉 오르는 길의 백미라 할 수 있지요.
일제 시대에 일본이 벌목을 하고 그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내었다는 아픈 사연이 있는 곳, 그래도 정말 그윽한 분위기 있는 신의 정원입니다.

여기에 오르지 못했으면 어떻게 했을까?
저 역시 오르면서 수도 없이 후회하고 갈등합니다.
그만 내려가자!
그래도 이렇게 한걸음씩 올라올 수 있음, 내가 죽어 볼 수 있는 부활의 땅입니다.
죽다가 살아난 현장입니다.

안개를 넘어서고 있는 산하

모진 바람이 안개를 불어내며 한폭의 수묵화같은 부드러움을 자아냅니다.
지리의 매력이지요.

자, 저곳이 천왕봉, 어느새 안개와 구름이 걷히고 환해진 정상입니다.

이곳, 마지막 갈등과 선택의 자리지요.
저곳으로 걸음을 떼기가 얼마나 힘이 들든지, 그래도 한걸음씩 가보니 어느새 그 자리, 그리고 가슴과 정신은 날아갈듯합니다.

천왕봉 정상에서 본 서쪽 능선이지요. 노고단과 반야봉이 우뚝 서 있습니다.
요 앞에 있는 산은 제석봉이랍니다.
종주를 하게 되면 저곳 노고단부터 이곳 천왕봉까지 걸어오게 되지요.

골짜기 가득 운무를 머금은 지리, 어머니의 품입니다.

드디어 천왕봉...

천왕봉 남쪽

천왕봉 서쪽

다시 지리의 능선들

해발 1915미터 천왕봉입니다.

여기서 내려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햇살 가득 품은 바위 구석에 누워 몇시간만이라도 쉬고 싶었지요.

그 바위 품에 누워 바라본 지리, 그런데 자리를 옮겨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일행이 장터목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리산 초행길, 그것도 몸이 아픈 이들이어서 제가 3시간만에 오른 장터목을 5시간이 넘게 오르고 있어 제가 천왕봉을 들러 내려가면
함께 만날 시간이 맞게 되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삶이란, 함께 살지 않았으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소중한 예가도, 교회도, 가족도, 하비람도 그래서 제게는 다 은인이지요.
덕분에 몸을 움직이고, 덕분에 숨을 쉬고, 덕분에 꿈을 꿉니다.
이제 제 차례지요.

그래서 내려갑니다. 그래서 살러갑니다.

저 노고단과 반야봉이 그렇게 이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맞이해 주었듯이....

그윽한 분위기, 그윽한 삶의 자리 만들어갑니다.

이곳은 다시 오르면서 마주했던 그곳.... 이제 운무가 걷히고 그 자태를 드러내 주었지요.

자, 저기 장터목 산장이 보이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보는 지리의 능선은 또 분위기가 다르지요.

한폭의 수묵화 같은, 햇살의 방향, 계절의 변화, 온도와 날씨에 따라 그렇게 신비함을 안겨주는 지리, 그 지리의 품에 안겨 보았습니다.
어떠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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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아래는 보너스로, 저의 눈으로 본 또 다른 마음의 고향 살림마을의 풍광입니다.

레 버린스 한켠의 깊은물의 유해 안장소,
지난해 급히 캐나다로 돌아가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이번에는 살림마을에 있으면서 매일 들여다 보고 가꾸고 있답니다.